목록으로 스토리 > 새소식 > 상세
  • 분야: 전문가기고
  • 관련 웹사이트: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1. 들어가며


코로나 사태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에게나 불확실성의 구름에 가리워져 있는 문제이다. 특히 서울과 같은 글로벌 거대도시의 삶에도 근본적인 충격과 변화가 있을 것이 라는 점은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그 다양성과 정도와 궤적이 어떻게 될지를 지금 모두 예 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거대도시가 지금까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조직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최소한 두 가지 들고자 한다. 첫 번째 는 지구화의 쇠퇴이며, 두 번째는 도시화 특히 ‘밀도density’의 성격 변화이다.


2. 지구화의 쇠퇴

1990년대 이후 거세게 진행된 지구화globalization는 지구적 거대도시megacity들과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 형성을 수반하였다. 지구화는 특히 산업적 과정이 전 지구적으로 조직된다 는 것이었으므로 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지식, 정보, 문화, 금융 등 무형적 요소의 결절 점nodal point로서의 도시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들의 전 지구적 연결망 속에서 굵직한 결절점들은 거대도시로 나타났으며, 이는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가 ‘지구적 수퍼스타 도시들’로 자라났다. 플로리다 교수가 고안한 인덱스로 따져볼 때, 서울은 세계 8위의 ‘수퍼스타 도시’로서 대단히 중요한 지구적 거대도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난 30년간의 독득한 도시화 현상은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는 다른 거대도시들과의 긴밀한 연결성이다. 홍콩은 물리적 거리로는 신장 지역과 더 가깝 지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심지어 정치적으로도 런던과 더욱 가깝다. 서유럽 중세의 도시

들이 인근의 농촌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사회적 공간을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몇 개 의 지구적 거대도시들은 서로와의 관계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지구화를 스스로의 사회적 경 제적 문화적 존재 기반으로 삼는다. 둘째, 이러한 지구적 거대도시들은 1950년대 이전의 도 시들과는 달리 공장이나 물리적 인프라와 같은 ‘유형자산’의 존재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 식, 정보, 문화, 금융 등과 같은 ‘무형자산’을 그 경제적 가치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는 탈공업화post-industrialization 이후 부가가치 생산의 주요한 요소가 유형적인 것에서 무형 적인 것으로 이동한 것에 조응하는 현상으로서, 도시 특히 지구적 거대도시는 소수의 ‘창의 적 계급’이 창출하는 지식, 정보, 문화를 그 중요한 경제적 원동력으로 삼는 쪽으로 나아갔 다. 이는 그러한 무형자산이 집중된 지리적 공간의 가격 앙등으로 이어져 ‘젠트리피케이션’ 을 낳았고, 이 지구적 거대도시들의 부동산 가격은 90년대 말 이후 폭등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는 지구화의 결과물인 지구적 가치사슬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도록 만들고 있으 며 (키신저, ‘성벽 도시walled city’), 나아가 인적인 이동을 가로막아 지구적 거대도시들의 중요한 번영 요인이었던 인적 교류를 크게 줄여버렸다. 첫째의 요인은 이른바 ‘리쇼어링’을 통하여 산업 특히 제조업의 일국화로의 회귀를 낳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지구적 차원에서 의 지식 정보의 결절점으로서의 거대도시들의 상대적 중요성은 약화된다. 이는 둘째의 요인 과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된다. 인적 교류의 격감은 비단 관광 투어리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학술, 비즈니스, 문화 행사 등을 통한 고급 지식 정보 인력의 교환이 줄어든다 는 것을 뜻하게 된다. 이러한 교환이 기존과 같이 국제 행사를 통한 직접 대면의 교류가 아 니라 디지털을 활용한 비대면 접촉으로 이동할 경우 지구적 거대도시들이 지금까지 누려왔 던 상대적인 이점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맨해튼의 컬럼비아 대학이 이타카 시골의 코 넬 대학에 비해 누려온 이점은 사실상 소멸하는 셈이다.

서울 또한 거대도시로서의 이점을 크게 누려온 도시이며, 극심한 젠트리피케이션과 부동산 가격 상승 또한 이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록 원주민들의 ‘둥

지 내몰림’을 낳는 문제가 있지만 주변 지역으로의 ‘낙수 효과’가 존재했던 것도 분명한 사 실이었다. 이러한 지구적 거대도시 네트워크의 상대적 위상 변화와 교란이 서울이라는 공간 의 자산가치와 부가가치 생산 능력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는 분명히 구조적 근본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여전히 거대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 우위를 강조하기도 한다. 바로 ‘밀도density’의 문제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이른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와 같은 이름으로 최대한 밀도높은 방향으로 도시를 재설계하는 흐름이 거세게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지금의 거대도시들 특히 동아시아의 거대도시들은 대단히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도시 발전의 3대 요소로서 ‘밀도’, 짧은 이동 거리, 격리와 분리가 적어 더욱 통합된 시장을 든 바 있다. 이러한 ‘밀도’를 통해 나타나는 ‘도시의 활기urban buzz’는 에너지 절약과 탄소 배출 절감은 물론 더욱 긴밀한 인적 문화적 소통을 통해 창의성을 만들 어내는 원천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5월 초 연휴 기간 서울 이태원에 결집했다가 바이러스를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 런데 이 ‘밀도’가 또한 코로나 사태 이후에 근본적인 도전에 처하게 된다.


3. 도시의 ‘밀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뉴욕 주지사인 앤드류 쿠오모는 뉴욕주 특히 뉴욕시의 엄청난 감염률과 치사율의 원인을 뉴 욕의 엄청난 ‘밀도’에 돌렸다. 전염병의 창궐을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 생활에 원인을 돌리 는 사고방식은 아주 친근한 것이어서 이러한 생각은 널리 확산되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밀도’에 있어서 뉴욕에 뒤떨어진다고 할 수 없는 홍콩, 상 하이, 서울 등에서 방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또한 뉴욕시의 경우도 오히려 감염자들이 많이 나오는 지역은 맨해튼이 아니라 그 주변의 퀸즈, 브롱스,

브룩클린 등이라는 것도 논거로 사용되고 있다.
방역 체제, 생활 문화, 정치 사회 시스템, 위생 및 영양 조건 등 숱한 요인들이 작동하게 마 련인 치사율과 감염률을 오로지 도시의 ‘밀도’로 돌리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는 이야기이 다. 게다가 이 ‘밀도’라는 개념이 정의하는 방법이 너무나 가지가지여서 대단히 모호한 개념 이라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함의점을 갖는 것 하나는, ‘실내 밀도internal intensity’ - 단위 실내 공간 당 사람 수 - 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성을 낳는 것은 분명 하다는 점이다. 기숙사, 칸막이 없는 사무실, 교회, 병원, 대중교통, 비행기, 크루즈 여행선 등의 공간은 따라서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도시의 ‘밀도’를 높여 ‘컴팩트 도시’를 건설한다는 기존의 전략도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실내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난한 계층은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실내 밀도’가 높은 환경에서 생활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다. 그리고 이러한 계층을 ‘격리’하는 도시가 아니라면, 이들의 감염 위험은 곧 도시 전체의 감염 위험으로 비화된다. 따라서 ‘컴팩트 도시’의 전략을 고수할 것이라면 그에 상응 하는 공간 재설계와 보건 시스템 개혁 등을 함께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내 밀도’가 일 정 정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할 것이며 특정한 집단이 집중적으로 그 위험에 노출되지 않 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옥 설계에서 건물 설계 등 포괄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둘째, ‘실내 밀도’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해지게 될 경우 현재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 행 해지고 있는 자영업 등의 업종은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서울 상업지역의 높은 지대 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단위 면적당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업종만이 남게 되는 바, 이것 이 대인 서비스업으로 이어질 경우 학원, 교회, 술집, 클럽, 노래방 등 ‘실내 밀도’를 최대한 으로 끌어올리는 업종들이 주종을 이루게 되며 이것이 이미 상당한 현실이 되어 있는 상태 이다. ‘실내 밀도’를 줄이고 통제할 수 있는 도시화란 결국 이러한 업종들에 상당한 타격을 안기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많은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고통으로 나타날 것이다.


4. 나가며: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도시화를 논하는 이들의 다수는 도시의 존재 이유와 존재 방식부터 근 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같이 푹 퍼진 도시sprawl이든 아니면 런던 일부 지역과 같은 ‘컴팩트’한 도시이든, 이러한 도시 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열차게 이루어져 온 지구화의 성과물을 더욱 많이 차지하여 부동 산 등의 자산가치를 상승시키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한 부분 으로서 존재하고 작동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와 작동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을 도시의 ‘경쟁력’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지구적인 가치사슬이 크게 와해 되고 제조업과 지식 정보 산업의 관계가 다시 재정립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그러 한 기존의 지구적 거대도시의 생존 방식은 근본적으로 도전에 처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도시로의 ‘전환’은 어떠한 방향을 가져야 할까? 지금까지의 경제관이 ‘지구적 자본주 의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부가가치 생산을 통한 성장과 자산가치 상승’이었다면, 이제 부터의 경제관은 도시 및 인근 지역 주민들이 자연 환경과 화해하고 서로와 공생공락하는 ‘좋은 삶buen vivir’이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만성적 실업은 장기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지역 사회는 물론 도시 전체가 쇠락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장 가 치가 아니더라도 자연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경제를 활성 화해야 할 것이며, 생활의 자급자족에 기여할 수 있는 도시 농업과 생태적 틀의 순환 경제 등이 생활 속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지난 반세기 동안 형성된 ‘지구적 거대도시’의 생활양식에서 이웃 및 자연과 공생공락하는 ‘좋은 삶’의 경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 위 소식과 관련된 의견이나 느낌을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