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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장을 열어보면 다양한 브랜드의 알록달록한 텀블러가 나란히 진열돼 있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건대 깜빡하고 텀블러를 가지고 오지 않은 날, 카페에서 예쁜 텀블러를 발견하고 나름의 합리화를 하며 충동구매 했던 날이 많았습니다. 환경재단에서 조사한 텀블러 사용 실태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텀블러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 수는 성인 10명 중 8명에 육박하지만, 이들 중 실제로 외출 시 텀블러를 챙겨 사용하는 사람은 31%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기 위해 텀블러를 구매하는 일이 친환경 소비로 여겨지는 것과 모순적이게도 정작 텀블러를 사 놓고 사용하지 않으면 환경오염에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텀블러 제조 과정에서 일회용 컵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 등의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환경재단에서 실험 중인 ‘서울오래컵’ 대여 사업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캠퍼스 내 카페에 다회용 컵을 대여·반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사업은 사회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지역문제 해결 시민실험실’을 통해 마련된 것인데요. 10월 마지막 주에 시작된 실험이 어느덧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현재 생활협동조합, 국민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캠퍼스 내 카페를 중심으로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필요할 때 무료로 빌려 쓰고, 원하는 곳에 반납만 하면 된다고?’

환경지킴이 꿈나무로서 야심 차게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려 노력했지만, ‘귀찮음’이라는 적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던 사람으로서 ‘서울오래컵’ 실험은 무척이나 솔깃한 이야기였습니다. 늦가을의 어느 오후, 말로만 들었던 서울오래컵을 직접 사용해보기 위해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를 찾았습니다.



세상에서 귀찮은 것이 제일 싫은 프로귀찮러도 인정한 “편리한 대여 시스템”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서울오래컵을 사용할 수 있는 카페는 두 곳. 그중 캠퍼스의 한가운데에 있는 학생문화관 내 카페를 우선 찾았습니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소독기와 컵 수거함이었습니다. 소독기 안에는 가지런히 정렬된 서울오래컵이 가득 보관되어 있었고, 소독기에 붙어있는 안내문에는 서울오래컵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사용 방법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에 따라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은 뒤 가입 신청을 해봤습니다. 휴대폰 화면에 뜬 가입 신청서에 간단한 인적 정보를 적자 1분 만에 간단하게 ‘오랭이’가 될 수 있었는데요. ‘오랭이’란 서울오래컵 사용자의 멤버십 이름입니다. 가입 시 한 번만 오랭이 인증을 받고 나면 이후에는 문자로 전달된 사용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래도 사용 대상이 캠퍼스 내 대학생들이다 보니 매번 보증금을 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인증 과정이 번거롭게 여겨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렇게 사용법이 간단하다면 정말 자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오래컵에 주세요.” 첫 번째 사용인만큼 다소 조심스러운 손길로 컵과 사용권 화면을 띄운 휴대폰을 함께 내밀었더니 카페 매니저님이 자연스럽게 컵을 받아 가 주문한 커피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향긋한 커피 향과 함께 커피가 담긴 서울오래컵을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요. 이와 함께 서울오래컵을 제대로 반납할 때마다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고 있으며 5번만 찍어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다는 알찬 정보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서울오래컵을 사용해 본 학생들은 그 간편한 매력에 반해 주변 친구들에게 열심히 권하고 있다는데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들 튼튼한 데다 예쁘기까지 하다고 좋아해요.”라는 후기를 전하는 매니저님의 모습처럼 서울오래컵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어느새 다회용 컵의 홍보대사로 변모해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서울오래컵과 함께 “슬기로운 캠퍼스 생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익숙한 듯 소독기에서 서울오래컵을 꺼내어 카페 카운터에 내미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커피를 주문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 정수기 물을 마실 때 사용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서울오래컵에 음료를 테이크아웃한 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을 따라 건물 바깥으로 걸음을 옮겨보았습니다. 빨갛게 단풍이 든 나무들 사이 한적한 벤치에 걸터앉아 서울오래컵에 담아온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가을볕을 즐겼습니다. 사실 일반 텀블러만큼 강력한 보온·보냉 효과를 기대하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차가운 음료를 다 마실 때까지 컵 속의 얼음은 녹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달리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져 텀블러보다 사용하기에 더욱 편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당일 사용 당일 반납으로 이뤄지는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음료를 구매했던 매장에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주 편리합니다. 이화여대의 아산공학관 내 생협협동조합 카페에도 서울오래컵을 대여하고 반납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이번에는 캠퍼스 끝자락에 위치한 아산공학관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좀 전에 대여한 컵을 반납하며 쿠폰에 도장도 받았는데요. 도장을 5번만 찍으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가 실제로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쿠폰에 도장을 다 찍고 무료 커피를 받아 가는 학생이 하루 동안 스무 명에 달할 때도 있을 정도인데, 아무래도 학교에 온종일 머무르며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경우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죠. 최근에는 사이즈업 이벤트까지 함께 진행하고 있어 호응도가 더욱 높다고 합니다. 수거함에는 어느새 다른 학생들이 반납한 서울오래컵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이라도 사용된 다회용 컵은 매일 전량 수거한 뒤 일회용품 사용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 '트래쉬버스터즈'의 세척 및 살균 시스템을 통해 세 차례의 소독과 세척 작업을 거쳐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오래컵을 직접 사용해보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빈손으로 와서 편하게 컵을 쓰고, 음료를 마음껏 마신 후에도 가벼운 손으로 집에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텀블러를 매일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은 물론 환경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텀블러를 가지고 다녀야 했을 때는 늘 가방이 묵직하거나 반대로 텀블러를 못 챙긴 날에는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서울오래컵을 처음 사용해본 그 날, 몸도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캠퍼스 밖에서도 서울오래컵을 사용할 그 날을 기다리며
지역문제해결 시민실험실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서울오래컵은 총 2,000개. 실험이 종료되는 날 이 중 얼만큼의 서울오래컵이 무사히 반환되었는지 총 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학생들 손에 들려 캠퍼스 곳곳을 누비고 있는 서울오래컵은 얼마나 더 많은 여행을 하게 될까요? 이 다회용 컵이 더 많은 이들의 손을 거칠수록 우리는 고통받는 자연과 동물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으로, 그리고 환경을 조금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실험이 한창 중반부에 이른 요즘에는 하루에 100여 개의 컵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은 다소 어색할 수 있지만, 다수의 대학생들이 일회용품을 줄인다는 취지에 공감해 마음을 활짝 연 채 새로운 시도를 반기고 있다니 정말 반가운 소식이죠. 게다가 환경재단은 이번 실험을 계기로 더욱 많은 장소에서 서울오래컵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인데요. 실제로 다른 대학교는 물론 여러 기관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며 연락해오고 있다 하니 그들의 다음 목표가 그리 머지않아 실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길을 걷다 한 카페에 방문했을 때 “서울오래컵에 주세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그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해봅니다.

취재·인터뷰 김지영
사진 김영동
제작·편집 어반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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