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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야: 서울혁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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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해서 치킨은 못 먹는다고? 혼자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래?”
“텀블러 가지고 다니는구나. 좋은 일이긴 한데 너 혼자 이런다고 세상 안 바뀌잖아.”
“결국 적게 소비하자는 이야기인데, 기업이 멈추면 경제가 무너진단 생각은 안 해봤어?”
 


기후위기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채식을 하며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질문에 맞닥뜨린다. 채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고집하는 사람은 착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 오해받는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마주할 때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노력에 회의를 가지게 되는 시점이 있다. ‘나 하나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한 골목마다 쌓여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텀블러를 쥔 내 손을 초라하게 만든다. 뷔페에서 사람들이 먹지 않아 버려지는 고기를 보면 주 1회 간헐적 채식을 지속하는 나의 노력이 부질없어 보인다. 내 안에서 작은 의심의 소리가 들린다.

“나 혼자 이러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그런 회의가 든다면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혁신주간 ‘전환을 향한 집합적 목소리-꿈꾸고 실천하고 연결하고’를 들어보자. 서울혁신주간의 한 꼭지로 11월 26일 열린 이 콘퍼런스에서는, ‘내일을 위한 전환, 일상실천 21’ 시민 실천 프로젝트의 과정과 성과가 담겼다. 일상실천 21 프로젝트는 도시 전환을 만들어가기 위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생활 실천을 해보는 프로젝트다. 10월 15일부터 11월 4일까지 21일간 시민 1,775명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생활 속 실천 가능한 8개 과제(다회용기 사용, 채식, 환경 독서, 코로나 시대 지속가능한 삶 디자인, 유휴 공유지 찾기, 기업에 과재포장재 반납과 변화 요청 편지 보내기 등)에 참여하며 그를 통해 느낀 성찰과 변화를 나누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채식을 하고, 기업에 과대 포장을 없애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컴퓨터와 핸드폰에 쌓인 메일과 카톡을 지우고, 환경 관련 책을 읽었다. 과연 이들의 실천이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냈을까?

21일 동안 400여 명이 1만 3천여 끼의 채식을 실천했다. 이로써 탄소배출이 4천여kg 감소했다. 다회용기를 사용한 700여 명의 시민들 덕에 일회용기는 8천여 개가 줄어들 수 있었다. 한 줄로 쌓으면 롯데 타워 2배의 높이가 되는 양이다. 349명의 시민이 1,783개의 신문 기사와 185권의 환경 책을 읽었고, 열아홉 개 기업과 환경부에 불필요한 포장지를 없애자는 편지를 27통 보냈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당신의 노력은 정말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곁에는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심이 있는 미련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의외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행동들

용기를 얻었다면 이제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텀블러와 에코백,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일? 그 외에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번에는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 김혜진 PM, 고기없는 월요일 이현주 대표, 쓰담쓰담 허지현 대표가 발표를 맡았다.

채식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방법 중 하나다. 우리는 채식을 건강을 위해 하는 활동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 양식이기도 하다. 고기없는월요일 이현주 대표는 발표에서 채식이 어떻게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채식을 하면 온실가스가 적게 배출됩니다. 서울시청 전체 직원이 주 1회만 채식을 하면 일 년에 7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나죠. 지금 서울시에서는 805개소에서 월 혹은 주 1회 채식을 제공하는데, 만약 일 년에 52끼만 채식을 하게 한다면 30년산 소나무를 75만 그루 심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현주 대표와 함께 채식 첼린지에 도전한 시민들은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도시 텃밭을 채식 정책과 함께 구현하자’, ‘육류세를 도입하자’, ‘급식에 채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 등의 제안을 덧붙였다. 만약 당신이 오늘 점심에 불고기덮밥 대신 두부스테이크를 먹는다면 세상에 뿜는 온실가스를 1/11로 줄인 셈이 된다.

둘, 세상에 좀 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다면 쓰담쓰담 허지현 대표와 함께 기업에 불필요한 플라스틱 생산을 하지 말라는 편지를 써도 좋다. 허지현 대표는 우유팩에 들어 있는 빨대, 우리나라의 스팸에만 붙어있는 플라스틱 뚜껑 등은 의미 없이 버려질 때가 많다며 소비자가 목소리를 낼 때 기업이 귀 기울여 듣는다고 강조했다.

셋, 보다 적극적으로 재활용에 힘쓰고 싶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집에서 쓰레기통으로 그냥 버려지는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모아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운영하는 플라스틱 방앗간에 보내보는 거다. 플라스틱은 분해되기까지 500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아주 낮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이우리 팀장은 이런 작은 조각을 모아 방앗간에서 분쇄해 업사이클 제품의 원료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넷, 이런 활동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UN SDSN Youth Initiative의 강동렬 총괄은 메일함을 정리하거나 핸드폰의 카톡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메일을 쓰거나 읽을 때 사용하는 전자기기와 데이터를 유통하는 데 사용하는 전송망, 데이터센터 등을 가동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가 탄소를 배출하고 지구 온도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10분 시청하면 1g, 전화를 3분 쓰면 10g, 데이터 1M를 보내도 10g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환경을 위한 실천, 앞으로의 방향

일상실천21에 참여한 시민들은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에도 한 줄 실천문을 쓰며 지속가능한 실천을 다짐했다. 그들의 한 줄 실천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관심’, ‘사용’, ‘줄이기’, ‘기후위기’, ‘실천’, ‘위하여’ 등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환경을 위한 실천은 계속하고 싶지만, 가치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개인의 의지보다 좀 더 전격적인 변화도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전환콘퍼런스에 발표자나 패널로 참여한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해보았을 것 같았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에코진희’라는 별명이 붙은 박진희 배우의 진행으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여론은 기업에 편지를 쓰는 직접적인 행동으로도 만들어지지만 화폐투표(소비를 통해 정치사회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행동)라고 불리는 행동으로도 만들어집니다. 좀 더 윤리적인 기업의 좀 더 건강한 제품, 친환경 상품을 소비자가 원한다는 메시지를 기업에 주는 거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건강한 선택을 하는 멋진 변화를 목격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더피커의 송경호 대표는 추가 인터뷰를 통한 소감에서 그렇게 밝혔다. 이에 UN SDSN Youth Initiative의 강동렬 총괄도 전기스위치를 열심히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전소에서 대량으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전기생산시스템이 바뀌어야 행동하는 시민들의 노력이  더 의미가 있어진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보다 더 많은 자본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과 정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장기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과제다. 발표를 맡은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 김혜진 PM도 서울시가 모든 행사에 비건 옵션을 추가하고, 일회용품 없는 행사 및 축제를 장려하며,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향상시키고, 2021년 서울시 시금고 평가 항목에 친환경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발표자와 패널이 가져온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상품을 다함께 둘러 보는 것으로 끝났다. 송경호 대표는 멋스럽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텀블러 가방 겸 와인백과, 캠핑을 갈 때 사용하기 좋은 소프넛(천연세제로 활용할 수 있는 열매)을 선보였다. 그가 가져온 친환경 제품은 굳이 의미를 들먹이지 않고 겉으로만 보기에도 근사하고 힙했다. 허지현 대표는 보자기를, 김동렬 대표는 태양광 충전기를 가져왔다. 이들이 가져온 아이템은 각각이 가진 쓸모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가치로 내일을 위한 전환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생태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생태학적 사건이라 말한다. 참고 버티면 지나가 버릴 일회성 재난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 같은 생활 양식을 유지하는 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찾아 올 현상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선 우리에게는 지금 ‘전환’이 필요하다.

콘퍼런스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마스크를 벗고 싶다면, 전환하세요!”


 

글쓴이 : 박초롱
딴짓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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